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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 별을 위한 시간 - 로버트 A. 하인라인

Algoribi 2020. 5. 19. 19:52

 

별을 위한 시간 - 로버트 A. 하인라인

책 소개

1956년에 발간된 로버트 A. 하인라인의 SF소설이다. 원래는 '시간의 블랙홀'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 출간됐었지만 2020년 '별을 위한 시간'으로 재번역해 출간했다. 상대성 이론을 이용한 타임 패러독스쌍둥이 역설을 소재로 했다.

상대성 이론 이란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속도에 따라 상대적이다'라는 개념으로,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우주를 여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껏해야 몇 년 정도를 여행한 셈이지만, 지구는 이미 몇십 년이 훌쩍 지나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인터스텔라에서 이러한 상대성 이론에 의해 주인공인 조셉 쿠퍼가 우주여행 후 다시 귀환했을 때 딸인 머피 쿠퍼는 이미 임종을 앞둔 상황이었음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상대성 이론이란 요즘은 SF에서 흔히 보이는 소재이지만 이 책의 출간 당시 이 작품이 상대성 이론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초기작 중 하나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여담으로 국내 재출간 기념으로 <천상열차분야지도> 목판본 포스터를 증정했었다.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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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톰과 팻은 일란성 쌍둥이다. 그들은 초국가적 비영리 연구 단체에서 어떤 테스트 제안을 받는다. 이 단체는 일정 확률로 쌍둥이들이 서로 텔레파시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능력을 가진 쌍둥이들을 선별하고 있다.

그럼 이 어린 텔레파시 능력자들을 모아서 어디에 쓰려는 걸까. 지구를 벗어나 다른 항성계에서 지구형 행성을 찾으려는 인류는 우주선과 지구 사이의 시간차를 극복하기 위해서, 쌍둥이가 서로 주고받는 텔레파시를 이용 하려는 것이다.

쌍둥이 중 한 명은 지구에 남고, 다른 한 명은 우주선에 타서 일종의 인간 무전기가 되기로 한다. 문제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가게 될 우주선에 탄 쌍둥이 한 명과 지구에 남을 쌍둥이 한 명 사이에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될 상대성 이론의 쌍둥이 역설. 그들의 시간은 이제 다른 속도로 흘러가게 되는데….

 

[출처] 아작(출판사)

 

감상 [스포주의]

일단 글이 매끄럽게 잘 읽힌다. SF 번역서가 이 정도로 매끄럽게 읽힌다고 느끼는 건 처음인 거 같다. 내용이 쉬운 것도 있지만 아마 바로 전에 읽었던 SF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여서 그런가..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거 같다..ㅋㅋ

 

주인공인 톰의 시점으로 사건이 전개되며 톰의 행동과 심리가 꾸민 듯 하지 않고 공감될 법해서 몰입도 있게 읽었다. 또한 톰이 우주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데브루 박사-정신과 의사-를 통해 컴플렉스를 치유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초반에 주인공인 톰과 그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인 팻은 서로 우주에 나가겠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로 두 사람 다 무의식적으로는 두려움에 의해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제일 기억에 남고 또 공감된다.

 

작중 텔레파시는 '즉각' 소통이 된다는 설정이 있다. 텔레파시는 질량도 지니지 않았고, 파동의 형태를 띠지도 않았으므로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장기정책재단은 이런 텔레파시가 가능한 쌍들을 모아서 한쪽은 지구에 한쪽은 우주로 보내 무전기 역할을 시킨다. 처음에는 텔레파시 쌍들 간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 아직 우주선의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기 때문에. 하지만 우주선의 속도가 점차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텔레파시 쌍들은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바로 우주선의 속도에 따라 시간이 상대적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지구에 남아있는 사람이 평범하게 말을 하면 지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우주선 측 사람의 입장에서는 배속재생을 한 것처럼 빠르게 들리고, 반대로 우주선 측의 사람이 평범하게 말을 하면 지구 측 사람은 그것을 느린 배속을 한 것처럼 듣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배려하며 지구 쪽 사람은 느리게, 우주 쪽 사람은 빠르게 말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감탄했다. 텔레파시가 '즉각' 소통할 수 있다는 전제에 당연히 소통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상대성 이론을 간과하고 있다가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아차 싶었다. 텔레파시는 단순히 무전기 역할만 할 뿐이니까 우주선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면 상대성 이론을 피해갈 수 없다. 역시 SF의 거장..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점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스토리는 후반까지 무난한 호흡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후반에 두 번째로 발견한 행성에서 외계생물의 등장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다. 외계생물을 묘사하고 그와 대적하는 부분을 읽을 때는 러브크래프트가 떠올랐다. 러브크래프트 스러운 특유의 ~미지의 공포~(feat. 크툴루꧁⍤⃝꧂) 같은 느낌이 나서 박진감 넘쳤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널-필드를 통한 귀환은 조금 허무한 결말이 아닌가 싶다. 사실 텔레파시 쌍이 몇 광년의 거리에서도 오차 없이 동시에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은 작중 초반에 일찍이 증명하였다. 그렇다면 이에 기반한 새로운 물리 법칙이 진즉에 닦였을 것인데, 지구는 왜 이를 알리지 않았나-어쩌면 고위 간부에게는 알렸을 수도- 원망스러웠다. 사실상 널-필드 제작이 이론적으로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시점에서 그들의 탐사를 중지시키고 신변을 보호해 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인류의 발전을 위해 공포와 고독-애초에 무사히 귀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을뿐더러 무사히 귀환한다고 해도 이미 내가 알던 사람들은 모두 죽고도 오래전의 이야기일 것이다.-을 견디며 사명감으로 우주로 나온 탐사자들에게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고 현실로 따진다면 이런 전개가 오류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미 수십 년 전에 우주에 간 탐사자들을 위해줄 사람은 다 죽고 난 뒤일 테니까.

 

유일하게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다면 그건 마지막 단 한 장의 결말일 것이다. 과학까지도 잘 녹여낸 소설임에도 왜 이런 황당하고 개연성 없는 결말을 선택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 부분은 기회가 된다면 직접 확인해보길 바란다.

 

마지막 부분만 제외한다면 SF에 입문하는 사람에게, 또 상대성 이론을 자연스럽게 녹인 작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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